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휴스턴 로키츠 (문단 편집) === [[하킴 올라주원]]의 시대 === [[하킴 올라주원]]이 팀에 입단하자마자 랄프 샘슨-하킴 올라주원의 트윈타워는 위력을 발휘했다. 데뷔 첫 시즌인 1983/84 시즌에 평균 21.0점 11.3리바운드 2.4슛블록의 괴물같은 활약으로 신인왕을 차지한 224cm의 거인 센터 랄프 샘슨에, 데뷔하자마자 평균 20.6득점, 11.8 리바운드 2.7슛블록을 기록한 하킴 올라주원이 가세했다. 한 명만 있어도 상대에게 공포인 20-10(2슛블록은 보너스) 센터가 두명이나 골밑에서 있으니 상대팀 빅맨에겐 지옥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이 막강한 랄프 샘슨-하킴 올라주원 트윈타워를 앞세워 팀의 성적은 29승에서 48승으로 오르는 호조를 거두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유타 재즈에게 3-2패배. 85-86시즌엔 5년 전처럼 전력에서 한수 위인 쇼타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까지 꺾으며 다시 한번 파이널에 진출하지만, '''또다시''' 래리 버드의 보스턴에게 4-2로 무릎꿇고 말았다. 86-87시즌에는 트윈타워의 한 축이었던 랄프 샘슨이 시즌을 겨우 반 정도 치르고 부상으로 아웃당하는 바람에 올라주원 혼자서 어찌어찌 2라운드까지 진출시키긴 했으나 시애틀에게 탈락. 1987/88 시즌 도중에 샘슨이 무릎 부상으로 인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팔렸고, 이에 따라 팀의 전력을 올라주원에게 집중시키지만 번번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1988년에는 빌 피치 대신 전 LA 클리퍼스 감독 돈 체이니가 맡았다가 1991/92 시즌 도중에 사임해 루디-T 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했고, 1993년에 11년간 팀을 운영한 찰리 토마스 구단주가 투자사업가 레슬리 알렉산더에게 팀을 팔았다. 반면 팀 리더인 하킴은 1991/92 시즌 때 팀과의 계약이 꼬여진 탓에 침체에 빠져 트레이드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었다가 다음 시즌 때 올-NBA 퍼스트 팀에 선발되어 감쪽같이 부활하기도 했다. 루디-T 감독은 하킴 올라주원의 숨은 보디가드인 파워포워드 오티스 도프, 정규시즌엔 그냥 괜찮은 롤플레이어였지만[* 그래도 선수생활 초창기엔 큰 키와 다재다능함으로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다.] 플레이오프에서만큼은 미칠듯한 클러치샷의 미스터 빅샷 [[로버트 오리]] 등이 버티는 포워드진에, 게임리딩능력은 평범했지만 삼점슛은 일품이었던 주전포인트가드 [[케니 스미스]], 비록 후보에다 루키였지만 강심장으로 큰 경기에서 대박활약을 해준 [[샘 카셀]], 클러치 슈팅력과 집요하기까지 한 수비력에 이를 능가하는 성깔로 유명했던 슈팅가드 "매드 맥스" 버논 맥스웰 등 외곽슛이 뛰어난 벌떼 가드진으로 팀을 정비했고, 리더 하킴도 오랜 선수생활과 경험을 통해 기량이 한층 더 각성해 팀 전력은 상승일로를 탔다. [youtube(17T30S22Szg)] 그리고 대망의 93-94시즌, 하킴 올라주원은 리그를 씹어먹으며 MVP에 올랐고[* 리그 MVP와 올해의 수비수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역사상 올라주원과 마이클 조던 뿐이며, 거기다 파이널 MVP까지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올라주원 뿐이다! 물론 조던은 정규시즌+파이널+올스타MVP까지 차지하는 일명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올스타 MVP는 사실상 이벤트전이라 그렇게 권위가 높은 상은 아니다.] 휴스턴은 58승 24패의 7할이 넘는 성적을 거두고 포틀랜드-피닉스-유타를 차례로 격파하며 다시 파이널에 진출, 상대는 당연히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아니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조던은 이때 잠깐 야구하러 나가있었다.] 그동안 번번히 조던의 벽에 막혀 절치부심하고 있던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 시리즈는 치열하게 진행되어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이었고[* 실제로 5차전까지 뉴욕이 3승2패로 앞서고 있었고, 6차전 막판에 존 스탁스가 역전 슛을 시도하지만 이게 올라주원의 손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스탁스는 최종전에서 슛 18개를 던져 2개 성공, 특히 3점슛은 11개 모두 놓치면서 시원하게 경기를 말아먹는다. 최종 스코어는 90대84] 마침내 휴스턴은 대망의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youtube(eywwdbDB1hE)] 94-95시즌엔 올라주원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의 악재가 퍼져 47승 35패밖에 못 거두며 정규시즌은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통해 얻은 클라이드 드렉슬러 덕에 상위시드를 연이어 업셋하면서 혈투끝에[* 1라운드 3승2패, 2라운드 4승3패, 3라운드 4승2패로 두번이나 최종전까지 갔고 마지막 3라운드에서도 4승2패로 결코 쉽게 승리하지 못했다.] 파이널에는 진출했다. 이 때 파이널에서 만난 팀은 [[샤킬 오닐]]의 [[올랜도 매직]]이었는데 이번에는 4-0으로 개발살내며 대망의 '''2연패'''를 이뤄내게 된다. 우승 트로피를 받은 후 탐자노비치 감독이 남긴 코멘트가 간지폭풍인데, >"We had nonbelievers all along the way, and I have one thing to say to those nonbelievers: '''Don't ever underestimate the heart of a champion!'''" - (챔피언에 이르는) 길을 걸어오는 동안 우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군요: 절대 챔피언의 열정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위의 영상에도 나오지만 2연패 기간동안 휴스턴에 붙은 멋진 별명이 바로 '''Clutch City'''였다.[* 추가설명을 하자면 Clutch란 중요한 순간에 뛰어난 활약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중요할때마다 활약하는 선수를 Clutch player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클러치 플레이어가 [[마이클 조던]]이고, 평범한 선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유독 활약하는 [[LA 레이커스]] 2000년대 초반 왕조 시절 [[로버트 오리]], [[데릭 피셔]] 등도 클러치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데릭은 커리어 말년에 클러치 욕심 내다 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식으로 하면 강심장. 반대말로는 Choke. 중요한 순간에 쫄아서(choke)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는 뜻이다.] 이 별명이 나오게 된 계기가 재미있는데, 휴스턴이나 하킴 올라주원은 1993-94시즌까지만 해도 그다지 클러치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94플레이오프 당시 2번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로킷츠는 3번시드이자 전시즌 준우승팀인 [[피닉스 선즈]]와의 2라운드 시리즈의 첫 두 경기에서 '''홈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잡고도 (1차전 18점차 리드, 2차전 20점차 리드) 역전패를 당하는 망신을 당한다. 그러자 당시 언론에서는 이를 신나게 비웃으며 "쫄보들의 도시(Choke City)"란 헤드라인을 뽑게 된다. 하킴 올라주원은 "(1, 2차전 후) 바로 피닉스로 갔다. 당시 비행은 끔찍했다. 누가 죽은 듯 했다. 누구도 방금 일어난 패배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피닉스 팬들은 신나서 스윕해버리라며 빗자루를 들고 응원했고, 실제로 3차전 당시 로키츠는 졸전을 펼치며 전반에 깨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로키츠는 "일단 하킴에게 공을 투입한 뒤 삼점슛을 노리기" 작전을 일단 버리고, 버논 맥스웰, 마리오 엘리,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완전 무명이었던 루키 [[샘 카셀]] 등에 적극적인 돌파를 주문하며 후반에 맹활약, 역전승을 거둔다. 4차전에서는 올라주원의 변함없는 활약, 그리고 후반에만 17점을 넣은 [[케니 스미스]]의 맹활약 등으로 4차전을 이기고 휴스턴으로 돌아가고, 결국 7차전만에 선즈를 탈락시킨다. 이때 휴스턴 지역지인 "Houston Chronicle"이 자랑스럽게 내건 헤드라인이 바로 '''Clutch City'''였고, 이후 95시즌에도 고작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나가 연이어 상위시드를 업셋하며[* 각각 0승2패, 1승 3패로 몰린 적도 있었다.] 클러치 시티란 별명이 공식화되기에 이른다. 위와 같은 백투백 우승 후 팀은 색깔과 로고를 남색과 흰색, 빨강 등의 우주틱한 디자인으로 바꿨고, 반지원정대를 차리기 위해 노장 [[찰스 바클리]]가 96-97시즌에 합류하자[* 이때 명예의 전당급 멤버가 셋이나 있는, 네임밸류만 보면 리그 최고인 팀이 형성되었으나 97년 기준으로 올라주원과 바클리가 만 34세, 드렉슬러가 만35세로 노장이라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서부 최강 유타를 위협하는 전력을보여줬다) TNT패널들이 슈퍼스타들이 뭉치는 이른바 슈퍼팀에 대해 논하는 와중에 [[케니 스미스]]가 이 팀을 두고"그건 슈퍼팀이 아니었어. 그건 super old 팀이었어"라고 해 다들 빵 터지기도... 훗날 피펜이 합류했을때는 피펜-바클리-올라주원으로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프런트코트라고 불릴만한 네임밸류였으나 이때는 더더욱 슈퍼올드한 팀이 된지라 많은 기대에도 1라운드 탈락에 그쳤다.]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뒤이어 악덕 단장인 제리 크라우스에게 질려버린 [[스카티 피펜]]도 98-99시즌에 합류하면서 [[마이클 조던]]이 없을 땐 역시 휴스턴인가 하는 기대를 모았지만, 이미 신흥강자 [[시애틀 슈퍼소닉스]], [[유타 재즈]]등에게 점점 밀리는 상태였고, 빅3의 시너지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당초 [[찰스 바클리]]는 피펜을 영입할 수 있다면 자신의 연봉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진짜로 자신의 실력과 명성에 비하면 헐값인 100만달러만 받는 새 계약을 하면서 팀이 피펜을 영입할 수 있게끔 해주어서 휴스턴 팬들을 흐뭇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철저히 [[필 잭슨|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된 피펜은 휴스턴에선 그냥 수비 잘하는 포워드에 불과했다. 휴스턴은 올라주원과 바클리의 골밑 공격에 큰 비중을 두었지만 팀의 심장인 올라주원은 이미 부상과 노쇠화, 그리고 '''심장병''' 등의 이유로 정상이 아니었고 바클리 역시 지나치게 무거운 체중으로 인해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골밑 공격도 예전만큼 위력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피펜이 합류한 98-99시즌은 파업으로 인해 50경기만 치루어진 단축시즌이었는데, 세명의 베테랑이 경기를 많이 뛰어서 손발을 맞췄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4년전 올라주원이 농락했던 [[샤킬 오닐]]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1라운드 1승3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기대를 모았던 빅3는 불과 한시즌만에 실망스럽게 끝이 났는데, 한 시즌 쉬던 [[필 잭슨]]이 레이커스로 컴백하자 [[스카티 피펜]]이 자신을 레이커스로 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피펜을 위해 연봉까지 삭감했던 바클리가 그에 대해 분개하자, 피펜이 언론에 대고 바클리를 '이기적인 뚱보', '입만 열면 우승타령인데 우승할만한 자격이 없는 선수'라며 비꼰 것. 당연히 언론도 휴스턴 팬들도 바클리를 응원했지만 오히려 피펜이 '바클리가 사과해도 안받아줄 것'이라며 적반하장격으로 나섰고 원조 모두까기 인형인 바클리조차 그러한 피펜의 태도에 질려버려 '피펜은 동료를 실망시켰고 팬들을 실망시켰다'는 점잖은 인터뷰를 하면서 대충 사태는 수습됐다. 이후 피펜은 언론에 트레이드 상황을 적극적으로 풀어 휴스턴 팀 분위기를 더욱 개판으로 만들면서 우승을 노렸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떠났다.[* 현재까지도 바클리와 피펜의 사이는 좋지 않으며, 심지어 피펜이 포틀랜드에서 뛰던 시절 해설이던 바클리는 피펜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어쩔수 없이 언급해야 할 때도 '33번 선수'로 호칭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연히 휴스턴 팬들에게 [[스카티 피펜]]은 금지어 취급했다. 결국 99-00시즌부터 4시즌동안 팀은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게 되고, 바클리는 99-00시즌 도중 친정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게 계기가 되어 은퇴했다.[* 시즌 초반이던 12월 열린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으나 의연하게 고통을 참다가 라커룸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는다. 당시 딸이 지켜보고 있어서 걱정시키기 싫었다고 한다. (ESPN Sportscentury 참조) 또한 바클리는 코트 위에서 자신의 마지막 이미지가 "부상으로 실려가는 것"이 되어버리는게 싫다며 재활에 몰두, 약 4개월 후인 4월 19일에 밴쿠버와의 홈경기에 출전해 오펜스 리바운드에 이은 풋백 득점을 하고 nba커리어를 마무리한다. 당연히 당시 홈팬들의 기립박스를 받으면서 당당히 걸어서 벤치로 물러섰다.], 팀의 심장이자 모든 것이었던 [[하킴 올라주원]]은 부상과 노후화 때문에 팀의 중심도 커티노 모블리와 신인 스티브 프랜시스에게 넘어갔으며, 에이전트 댄 페이건의 농간 때문에 00-01시즌 종료 후 엉뚱하게 [[토론토 랩터스]]로 떠나야 했다. 팀의 2연패를 이끌었던 루디-T 감독도 02-03 시즌 막판에 방광암에 걸려 11년만에 사임해야 했다.[* 당시 로켓츠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했으나, 선수들, 특히 루키 야오밍의 정신적 버팀목 루디-T가 사임하면서 슬럼프에 빠져 승률을 많이 까먹고 결국 피닉스 선즈에 간발에 차이로 뒤지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더불어 야오밍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 실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